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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규범적 언어

지난 글에서 이어지는 글이라고 봐도 무방.언어가 규범(norm)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철학자가 아닌 사람은, 시인과 소설가를 제외한다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예술적인 가치의 실현과 승화에 있기 때문에 규범을 따를 필요도 없고, 또 그들의 언어가ー예컨대 셰익스피어처럼ー역사적으로 가치 있다는 이유로 사전에 등재되는 과정 등을 통...

맥도웰 인터뷰 & 잡상

존 맥도웰이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에 소속된 교수인 James R O'Shea(한국어로 읽으면 제임스 알 오셰이 정도가 되겠다)와 대담하는 영상을 발견했다. 아직 절반 정도밖에 시청하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코멘트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을 나열하는 정도는, 위 동영상에서 맥도웰이 더듬거리며 그러는 것처럼, 가능할 것 같다.1. 피터 ...

필연성과 우연성

<그에 반해 크립키는 선험성은 인식론적인 것으로, 필연성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분명히 구분하고, 이러한 토대위에서 우리의 문장을 성립시키는 명명(naming)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리하여 선험성과 필연성의 독립성을 해명한다. 우선 크립키가 제시하는 우연과 필연의 구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것이 거짓이라면 분명히 그것은 필연적으로 참이 아니다....

마음과 도덕

이 글을 읽으니 비트겐의 ‘언어 게임’ 개념과 사밀성(사적으로 접근 가능한 마음)에 대한 비판이 정말로 탁월하단 생각이 든다. 사밀한 마음이 존재하는가? 비트겐주의자의 대답은 노. 왜냐면 사적 언어는 언어화할 수 없고, 따라서 개념화도 불가능하고, 언어 게임 안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기 때문. 그런 마음이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후기 비트겐의 프레임 안...

칸트와 맥도웰

김영건이 지적하는 것처럼, (관념론자의 혐의를 씌우는) 맥도웰의 칸트 독해는 정당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맥도웰의 작업을 폄하해도 좋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의 칸트 해석이 마음과 세계에서 개진하는 주장의 핵심 근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M이 주장하는 '선험적 경험론'은 주로 후기 비트겐슈타인과 헤겔, 특히 정신현상학에서 헤겔...

포기에 대해

논문은 학술적인 글이다. 소설은 학술적이지 않은 글이다. 비평은? 학술임을 포기한 글이다. 비평은 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포기하면서 얻은 귀중한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데 비평의 최종 목적이 있다. 철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포기를—강박적으로—모르는 것이다. 포기를 알게 되면 사람은 철학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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