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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노직의 행복기계(happiness machine)

Remember that Bentham claimed the following, Pleasure and only pleasure is good.1벤담이 다음과 같이 주장했음을 기억하자. "즐거움, 즐거움만이 선이다." Now, consider the following thought experiment.그리고, 다음의 사고 실험을 고려해 보라. Supp...

맥도웰 인터뷰 & 잡상

존 맥도웰이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UCD)에 소속된 교수인 James R O'Shea(한국어로 읽으면 제임스 알 오셰이 정도가 되겠다)와 대담하는 영상을 발견했다. 아직 절반 정도밖에 시청하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코멘트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을 나열하는 정도는, 위 동영상에서 맥도웰이 더듬거리며 그러는 것처럼, 가능할 것 같다.1. 피터 ...

Philosophical memo

말년의 저작인 On Certainty를 읽고 "일반적 명제 형식에서 명제는 오직 진리 조작들의 토대로서만 명제 속에 나타난다."라는 논고의 구절(5.54.)을 읽으면, 비트겐슈타인이 하는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는 나중에 "진리 조작"이라는 표현을 포기하게 된다. 명제 형식을 삶의 형식으로 바꾸고, (진리 조작을 삭제한 다음에) 토대로서 ...

"통 속의 뇌"에 대한 흔한 오해

우리는 종종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만약 우리가 미친 과학자에 의해 통 속의 뇌가 되었다면 어떨까? 그러나 이것은 원래 통 속의 뇌 논변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다시말해, 이는 통 속의 뇌에 대한 잘못된 적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원래 힐러리 퍼트넘이 "통 속의 뇌"를 고안했을 때 그는 물리주의자에 대한 반박을 의도했다....

색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 메모

95. In my room I am surrounded by objects of different colours. It is easy to say what color they are. But if I were asked what colour I am now seeing from here at, say, this place on my table, I co...

정합주의와 소여

<경험에 직접 나타나는 사실에 의해 이성적으로 제약되는 자발성이 보여주는 경험과 세계의 관계에 관한 그림은 이런 정합주의를 극복하고, 세계에 대한 연결을 회복한다. 그리고 이 그림은 오직 수용성 그 자체가 자발성과 이성적으로 연관되는 한에서 가능하다.>정합주의로 검색해 나온 글을 읽다가 이런 문구가 나왔다. "경험에 직접 나타나는 사실"은 경...

진리의 양태(Aspects of the truth)

진리는 우리 눈 앞에 여러 가지 모양과 색채, 질감과 이야기(그렇다, 이야기!)를 띠고 나타날 수 있다. 나타나는 방법도 으레 당연하듯 나타나기도 하고, 아니면 우리를 놀래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 우리는 진리가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왜냐면, 필연적인 대문자 진리(Truth)가 아니라 소문자 진리(...

필연성과 우연성

<그에 반해 크립키는 선험성은 인식론적인 것으로, 필연성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분명히 구분하고, 이러한 토대위에서 우리의 문장을 성립시키는 명명(naming)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리하여 선험성과 필연성의 독립성을 해명한다. 우선 크립키가 제시하는 우연과 필연의 구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것이 거짓이라면 분명히 그것은 필연적으로 참이 아니다....

칸트와 맥도웰

김영건이 지적하는 것처럼, (관념론자의 혐의를 씌우는) 맥도웰의 칸트 독해는 정당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맥도웰의 작업을 폄하해도 좋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의 칸트 해석이 마음과 세계에서 개진하는 주장의 핵심 근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M이 주장하는 '선험적 경험론'은 주로 후기 비트겐슈타인과 헤겔, 특히 정신현상학에서 헤겔...

비트겐슈타인과 규범의 문제

퍼트넘이 말년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하는 방식'을 철학의 모범? 전형으로 제시한다는 점이 참 인상깊다. 그 말은 비트겐슈타인의 방법이 (반철학 따위가 아니라) 철학적 방법에 가까웠다는 소리 아닌가. <철학적 탐구>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한다면 이 말은 당연하다. 분석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한 인물의 생각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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