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와 현대


"나는 가상의 질서만 좇으며 죽자고 그것만 고집했다. 우주에 질서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나... 이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중략)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닌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쓸모 있기는 했지만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니까 말이다.. .. (중략)... 유용한 진리라고 하는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


중세와 현대는 그 모습에서 얼마나 서로 닮아 있는가. 중세는 중세이고 현대는 현대이지만, 시대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만 제외하면 중세는 현대와 똑같다. "우주에 질서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우주의 질서는 이렇다고 말하면서, "목적을 지닌 질서"가 우리 세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식에는 한계가 없고, 앎에는 "의미가 없"다. 현대의 전문가주의(proism)는 한 줌의 앎을 위해서 모든 종류의 회의를 포기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지만, 그 믿음에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마치 칸트가 자신의 모든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물자체라는 이론적 대상물을 가정한 것처럼. 칸트의 믿음이 근거 없다면, 모든 것들도 최종적인 근거를 갖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