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남을 존중하는 것과 공적 활동이 남에게 개입하지 않는 것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는 않다. 와그 7화 보면서 느끼는 점: 야마칸은 인간 마음의 바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자비없는 연출을 하면서 약간 신들린 듯한 느낌도 준다. 칸나기 마지막 화가 그랬지. 러키스타도 약간 그런 느낌을, 겉으로는 보여 주지 않으면서 암시하는 것 같았다.
남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면 안 된다. 의미가 없는 행동이거나, 태도이기 때문. (그리고 남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보여 주는 훌륭한 작품이 위플래시. 재즈 드럼을 아무리 잘 친다고 해서 주인공이 잃어버린 것들이 다시 돌아오지도 않고, 나보다 더 잘 치는 사람도 많기에) 물론 의미가 없는 일일지라도 계속 하다 보면 의미가 생길 거라고 믿고 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지만, 그건 자신에게 거는 기준일 때 가혹함의 형벌을 피할 수 있다. 남이 다른 사람에게 가혹할 이유도 없고, 결국 의미가 없는 행동에 불과하면 서로의 감정만 상하는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할 줄 아는 아이는 스스로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할 줄 모르는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아는 아이를 이해한다.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축복받지 못한 사람이 반대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일이에요. 나이들고 보니 중요한가? 싶은 생각도 든다. 스푼으로 떠 먹여 주는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스푼을 떠 먹여 주는 일은 필요하다. 어릴 때는 자립이라고 하면 엄청 멋지게 보이고 그랬지만 이제는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은 특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스스로 공부한다, 자율적인 정신, 자립해서 살자라고 말하면 수사적 멋짐은 있다.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 간지가 있는 것 같잖아? 하지만, 이제는 자립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자립을 말하는 일은 특권을 가진 사람이 특권을 망각하고 스스로 모든 걸 성취하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난 사람들에게 자립을 기대하지 않는다. 같이 잘 해 낼 수 있기만을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