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70~80년대 초반 생들이 자신이 제일 개인주의자라고 자만하지만, 각종 번개나 모임 사진을 올리는 걸 보면 오히려 90년대생 개인주의자보다 인간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처럼 보인다. 완전히 아웃사이더는 아니고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타인의 눈에는 개인주의자처럼 보이고 싶은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후반~90년대생 개인주의자는 절대 번개나 모임 같은 거 안 하거든. 카테고리가 완전히 나뉘어져 있어서 가족 모임도 안 나가고 사람도 3명 이상이면 안 만난다. 그런데 전자는 후자의 로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후자는 일단 사람과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모임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당연히 번개나 친목 위주의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아마도 전자에게 있어 개인주의자의 좋은 점이 주입되면서 외향적인 사람에게도 스스로를 개인주의라고 부르는 게 멋져 보이게 된 것이 아닐까. 번개 안 하는 개인주의자도 70년대생 중에 있을 텐데 이 둘도 동시대에 즐기던 거 빼고는 아마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서구식 개인주의자는 당연히 후자를 가리킨다. 예컨대, You are so egoistic이라고 말할 때 뉘앙스가 듣는 사람이 개인주의자로 사는 놈이라는 뜻이니까. 전자는 오히려 홈파티에서도 잘 노는 사람들이 멋지게 살고 싶어서 개인주의를 표방하였던 것이므로, 문화적인 적응이라고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여기까지 한 이야기는 lifestyle과 disposition에 대한 말이니까 윤리적 입장, 지향점과는 별도로 논의할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되며, 한편으로 X세대 개인주의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급격하게 보수화되는 이유가 궁금하지만 여기에도 한국적인 맥락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갈음하고 싶다. 영어의 수격도 3명 이상이면 그냥 무리(they) 취급인데 2명은 각자에게 “you”라는 카테고리를 부여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우리(we)’를 잘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보통 타자(other)라고 불리지만 타자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이고 숭고한 의미는 결여되어 있는 평범한 ‘너희(you)’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거기에 인류의 희망이 달려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이해하기 싫거나 생업이 바쁘면 아는 사람들하고 번개나 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면서 사는 것이다…

근대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남성을 '존경하는' 동경하는 자의 위치에 서는 편인데, 라캉이 올바르게 지적한 것처럼 욕망을 욕망하는 게 여성의 욕망이기 때문에 그러한 위치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지만, 근대가 무너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요구된다. 한 마디로 아버지와 외디푸스 삼각형에서 벗어나서 새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새로운 사업 계획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어떻게 할지의 문제를 잠시 곁으로 내버려 두면, 삼각형이 무너질 때 평등할 관계는 연애에 부착된 이미지를 폐기하고 친구(동무)의 이미지를 새롭게 차용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정확히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됐다.>에서 등장하는, 오리모토 카오리가 히키가야 하치만에게 던지는 질문은 몹시 의미심장하다.

한국 좌파들이 실패하고 폭망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개인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도 개인주의가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도 개인주의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한 줌도 안 되었던 좌파는 시대가 변하면서 망했다.



덧글

  • 자그니 2019/02/11 21:55 #

    그냥 나이때문은 아닐까요. 70년대생이면 이제 다들 사십대니....
  • Barde 2019/02/12 00:41 #

    제가 그 분들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증오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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