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과 일반의지



예전에 이런 글을 적었는데, 지금 읽어 보니 너무 장강명씨를 욕한 것 같아서 조금 다운 톤으로 적어볼까 한다.

사실 나는 한국작가를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최근에는 브릿G에서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몇 개 읽었다. 좋은 작품도 있었고, 나쁜 작품도 물론 있었다), 장강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별로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 대중의 욕망을 소설 속에 그대로 녹여내는 장인이라는 의미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이 생각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방망이'가 나에게는 악명 높은 정의봉 만큼이나 인상적이지는 않다는 의미에서 완전히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대중 속에 포함된다면 말이다. 최근에는 그가 쓴 칼럼을 몇 개 읽어보기는 했는데, 읽던 중간에 창을 닫아버리긴 했지만 내가 닫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읽을 만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칼럼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그건 작가의 자유 아닌가.

아무튼, 대중의 일반의지를 그대로 체현한다는 의미에서 장강명은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지지하는 일이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나는 계나보다는, 한국에서 살면서 글을 쓰는 장강명이 조금 더 낫다는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장강명이 동시에 말하는 대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희망이 없다면 그건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고,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건 미래에 대한 전망(이라는 게 만약 존재한다면)이 좋지 않다는 말이다. 이웃집 아저씨가 대박 유튜버의 먹방을 시청하며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단순히 중년 남성이 도시락을 먹는 풍경이 아닌 것처럼, 헬조선에 대한 이야기로 칼럼을 시작하는 <한국이 싫어서>의 작가가 우리에게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그가 쓴 칼럼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기를 용서받을 수 있다면, 칼럼과 대중 사이의 관계는 삶의 자세와 관련된 깊고도 중요한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p.s. 만약 누군가가 내게 물어본다고 하자. 나는 대답한다.

"그건 누구의 불평등입니까?"

그는 대답한다.

"서민의 불평등입니다."

"그러면, 서민은 누구입니까?"

그는 대답한다.

"서민은 서민입니다. 나 같은 사람 말입니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은 겉보기에는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그는 하소연한다.

"나는 힘들고, 집값이 너무 높고, 오늘도 열심히 일했고, 애는 태어나고, 어쩌구저쩌구..."

나는 말한다.

"그런 것들이 당신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책을 몇 권 읽어보십시오."

그는 말을 듣지 않고 떠난다. 나는 애덤 샌들러처럼 들리지 않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럼에도 난 당신을 아낍니다. 내내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