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부제: 교양과 유교)




한국 사회에서 까칠하게 사는 것, 즉 예민한 삶의 자세는 내가 원하는 이런저런 것들을 얻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면, 이런 식의 인과응보도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소한의 선택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는 대안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보다 낫다. 그러니까, 만약 1)유해지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면 네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지만, 반면에 2)까칠한 태도로 좋은 게 실은 좋지 않다는 식으로 살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없다는 식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1번의 삶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그 사회는 자유주의의 최소 요건을 갖춘 것이다.

왜냐면, 공동체에는 암묵의 룰이 있고 한국 사회가 인정하는 규칙은 자본주의와 유교적 공동체주의다. 두 가지의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 한국 사회는 관대하지 않다. 그러나, 대안적인 삶(=서구에서는 주류인 삶)을 사는 대체적 공동체를 짓밟거나 목소리를 아예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 진보적이다. 남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는 룰이 게임의 규칙이라면, 사실상 이 룰도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규칙만큼이나 강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건 자유주의 사회가 지켜야 하는(지키고자 애쓰는) 근본적인 대원칙이다. 특수한 상황(군대, 학교, 감옥 등)에서의 폭력적 억압을 없애는 게 다음의 과제다.

지금 한국에 있는 대학에선 교양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먼 미래에는 한국 대학에서도 교양교육을 하는/시키는 날이 올 것이다. 교양의 정체는 민주주의, 계몽주의와 결합한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사실 현대에 한국 사회는 교양이라는 거대한 시험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멤버쉽, 규칙, 소속감, 이것들이 참으로 구차하지만, 적어도 시민적 관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자유주의적 교훈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 가지는 타인의 사적인 진리추구를 무시하지 않는 자세. 둘은 타인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과 이타심. 셋은 동료 시민에 대한 존경심이다.

공동체주의는 1을 "진리는 공동체 속에 있다"는 목적론으로 바꾸고 2를 "법 아래의 의무가 중요하다"는 완고한 의무론으로 교체하지만, 3은 교체하지 않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유교적 공동체주의는 3을 "나이 많은 시민에 대한 존경(공경)심"으로 바꿈으로써 원래 공동체주의가 가졌던 미덕을 훼손한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가 진정한 교양의 도전을 받는다면 1번과 2번이 아니라 3번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징후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말해 젊은 세대는 세대론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유교의 가장 약한, 그래서 가장 악랄한 사슬을 증언하는 말들이 바로 세대론이라고 불리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