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9.




생각해 보면 난 예전부터 작은 집단 안에서 정치질을 하는 사람들을 피했다. 왜냐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개인주의자들을 좋아했냐고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데, 한국에서 개인주의자는 언제나 가족 중심의 이기주의를 임베드하고 있었다. “가족 없이”, 정말로,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연대와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 이유가 변형된 유교주의에 있다는 것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집단 속에서 허무했던 나의 경험도 의식의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그저 애처로운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차가운 현실 속에서 증명받는 일을 인간은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의 보편성이 동물적인 본능과 감성 속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내가 그리는 그림이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60년대 사람들이 꾸었던 꿈(자유연애, 탈권위, 공산주의)이 실패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아버지/어머니 세대를 극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어머니 세대가 누리던 쾌락들을 포기하지 못했고, 또한 가족주의의 틀 안에서 가족인 부모를 포기하지 못했기에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중략)

오늘 내가 우산을 잘못 가지고 내려왔을 때, 그 주인이 나를 째려보면서 지었던 표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정말 그게 인간이 지을 수 있었던 표정인지 나는 아직도 긴가민가하다. 모든 게 불투명하고, 어리석기만 하다. Excuse me. Is it my umbrella? 라는 질문과 웃는 표정 하나만 있었더라면, 그렇다면 나는 오늘 일을 꿈에서 잊어버렸을 텐데. 에휴.

내가 사랑하는 형식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모든 형식을 사랑한다는 건 거짓말이고, 어떤 형식을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모른다는 게, 나를 비평으로 이끄는 것 같다. 추상성의 핵심은 비-논리(더 정확히 설명하면, 메타논리에서 나올 수 있는 비형식적인 논리적 형식의 일반명)라고 생각하는데, 비-논리와 대비되는 논리를 일반 대중은 의미라고 부르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비-논리를 무의미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박사논문 제목이 "의미의 무의미의 의미"였다.

예를 들면, 꿈에서 위로 간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밑에서 올라오면 그건 유클리드 기하학을 무시하는 짓이기 때문에 이상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꿈에서 그런 일을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리가 없는 게 아니라 꿈에서 우린 모든 종류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메타적인 상태에 있다. 전건긍정(modus ponens)이나 후건부정(modus tollens)은 깨어 있는 동안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을 정확히 반영하지만, 그러나, 꿈의 한 장면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뒤에 내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도 최소한의 일관성은 존재한다.

꿈에서 벤젠 고리를 뱀들이 꼬리를 문 채로 발견한다거나, 아니면 예지몽을 꾼 뒤에 그게 맞는 일도 사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하지만, 그런 일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때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과학>과 전혀 다른 활동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의존하는 자연과학이 단지 미개한 «과학»에 불과하다면, 과학을 숭배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문명을 내버리고 과학을 무시할 이유도 없다. 아무튼 이 <과학>이 있어야 나중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저 «과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비교적 자명하게 밝혀진다면 말이다.

유럽 문명의 천재들이 <과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란 베이컨의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에서 말하는 허장성세와는 다르게 지극히 사적인 동기부터 출발하였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사적인 동기야말로 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었고, 나중에 올 «과학»도 동일한 길을 걷게 되리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 때야말로 비로소 인간이 축적해 왔던 지적인 활동이, 현대미술을 비롯한 예술을 포함해서, «과학»에서는 «세계»에 대한 논리적 표현이며 하나의 통합된 설명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도 물론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세계>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