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1.

일본—현대부터 150년 전까지 있었던 어느 국민국가만이 아니라, 아스카 시대 이후의 넓은 시간적인 범위를 포함하는 통시적인 문화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의 ‘사상’이라는 게 대체 뭘까? 정말 그런 속성이 일본인에게 있으므로 서구인이 일본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 아니면 즉물적 욕망의 소비의 귀결이 일본이었던 것일까. 그게 결국에 불교적 문화의 한 가지 참신한 해석으로 귀결된다면 참으로 재미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도, 하지만, 어쩌면.

물론, 일본인의 정신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불교적인 사고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한, 서구적인 것—좋든 나쁜 쪽이든 극단적인 방식으로 추구하였던—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대안도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하는데 이것이 과연 우리 인류가 진정으로 추구해 마땅한 가치인지는 의문이다. 사실 난 서구지상주의자라서 동양에 대한 열등감이 당연한 합리적 귀결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막상 전세계가 서양이 된다면 참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 세계는 아마 지금보다는 더 완벽할 것이고 과학기술도 불치병을 치료하고, 우주로 워프 비행을 구현할 정도까지 발전하겠지만 말이다. 추측컨대, 서양인이 우주로 나가도 별 볼 일이 없을 거라는 근본적인 허무감이 근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러한 미스터리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만약 우리 은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문명과 지성체가 없다면 정말 그런 식의 발견은 공허와 허무 말고는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Aim at, 에서 무엇을 겨냥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그리고 언제나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면, 일본인의 어떤 자세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는 현재의 나로서는 아름다운 답을 내놓을 수 없다. 일본인, 그리고 불교적 사고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고도의 추상성이 수학적이거나 과학적인 발견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과연 사후적으로 재발견된 밀교적인—일본의 불교 전통은 원래부터 밀교가 대세였다—비법(recipe)에 불과하다면, 일본의 사상은 세일즈를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 예상이 틀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p. s. 한 가지 궁금증: 왜 한국인들은 주례사 비평이 아니면 잘 쓴 비평이라도 읽지 않을까? 비평숙(genron이라는 곳에서 1년 동안 비평가를 키우는 유료 과정)과 신예술교(같은 곳에서 1년 동안 예술가를 키우는 유료과정)는 한국에서 나오기 어려운 것도 맞지만. 민간이 발달한 일본의 전통과, 주로 금전적인 측면에서 관에 의지하는 한국의 전통 사이의 차이점이라는 느낌도 어렴풋하게 든다. (중략) 마이조 오타로는 낭만주의자구나. 아마 최번역가는 마이조 오타로가 낭만주의자라서, 남자일 거라고 짐작했겠지. 정반대로 나는 마이조 오타로가 몇몇 작품에서 현실적이기 때문에 여자일 거라고 짐작했던 거고. 복면 작가란 재밌다.

낭만주의와 교양주의는 다수의 교육받은 "보통 사람"의 지지 없이는 성립하기 힘들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통 사람들은 입시 교육, 스마트폰 보급률 등 여럿 이유로 책을 읽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책을 읽고 만드는 사람은 절망하겠지만, 다른 편에서는 책에 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즐거워할 것이다. 만약 보통 사람들이 아프리카나 아이돌, 여행이나 K-뷰티 등에 돈을 쓰지 않고 책과 잡지에 돈을 쓰기 시작한다면 이러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히 화를 낼 것이다.

한국에서 보통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가 책이었던 적은 유사 이래로 한번도 없었기에 시장을 빼앗겼다는 기분일 것이다. 문제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에 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의 돈을 저들로부터 가져와야 하는 (생존으로부터의) 책임은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의 "책임"은 물론 사람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이성적인 책임도 포함하고 있는데, 만약 책을 만드는 사람이 이를 포기한다면 한국 책 시장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해가 뜨기 전의 여명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지만, 계몽의 찬란한 빛이 한국 사회를 고루고루 비출지 어떨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