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과 아름다움, 올바름

내가 평소에 즐겨 읽는 인디지오님의 블로그에, 며칠 전에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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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며칠 전 우리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가벼운 불평을 했다. 한국 인터넷 업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생들이 '끼리끼리 해먹는 문화'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게 처음 뜰 무렵에 창업을 했거나 그 업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업계 주류로서 자기들간의 네트워크 안에서 회전문을 돌려가는 걸 보면 재벌 3세들이나 다를바가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친구가 예로 든 것이 카카오의 JOH 인수 사례였다. ..."
나는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운동권 486이라서 (서로의 인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난 이런 일이 벌어져도 전혀 놀랍지 않다). 한국 사회, 특히 작은 사회는 외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재밌게 굴러간다. 그런 부정의하고 폐쇄적인 작은 사회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이라는 큰 사회를 이룬다고 상상하면 아득해진다. (동시에 탈조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 하루하루 나에게 시련을 주어 강해질 기회를 주는 코리아여.)

어떤 사람도 영원히 친구 없이 혼자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가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같이 살아야 하고 소속되어야만 하는 공동체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정상보다 이들의 수가 많아질 경우 사회도 개인의 기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공동체는 개인을 억압하지만, 동시에 개인은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개인주의는 공동체가 최대한 개인의 삶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오로지 전체의 공리에만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슬로건이다. 만약 개인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공동체가 전체의 공리를 높이지 못한다면, 이것은 완전한 개인주의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과 전체의 공리를 조화시키는 일, 이러한 일의 가능성은 배려의 엄격한 기준(rigorous standard of care)을 갖는 아름다움으로부터 성립한다는 주장을 스캐리는 에서 한다. 완벽한 미술작품이 부분부분에서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도 그렇다.

만약 스캐리의 주장이 옳다면, 아름다움은 정의를 근거짓는다. 아름다움은 정의의 원천이 되며, 우리가 아름다움으로서 정의를 다시 탐구하고 관찰하게끔 만든다. 한편으로, 인맥으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사회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의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름다움은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이끌어 낸다. 아름답지 않음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정의롭다고 말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불러 일으킨다.

좋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의미에서 좋음은 "옳음"이며, 이와 반대되는 말은 "나쁨", "그름"이다. 두 번째 의미에서 좋음은 "아름다움", "알맞음"이며, 이와 반대되는 말은 "추함", "잘못됨"이다. 세 번째 의미에서 좋음은 "진리임"이며, 이와 반대되는 말은 "거짓"이다. 스캐리는 좋음의 두 번째 의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음이 좋음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좋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전부 포괄하는, 마치 삼위일체와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캐리의 주장을 좋음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아니라, 아름다움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인맥으로 굴러가는 사회는 아름답지 않다. 동시에 이러한 사회는 정의롭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는 진리가 아닌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사회는 인간 본성에 충실한 사회이다. 사회심리학적인 연구의 결론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고려하지도 않는다. 즉, 이러한 사회는 사실 그대로의 조건으로 주어져 있다. 이렇게 반대되는 항을 세워 두면 그림이 명백해진다.

좋음 {아름다움, 옳음} ↔ 좋음 {진리}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가능하다. 아름다움과 좋음이 어느 한쪽이 우선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근거짓는다면 어떤가? 예컨대 아름다운 작품을 볼 때 우리가 아름답다는 인식과 함께 저것이 잘 만들어져 있다는, 즉 더 이상 (만듦새에 있어서) 옳을 수 없는 식으로 옳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이성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말은 합리적인 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합리적인 도덕이 없으며 단지 인간의 본능에 호소한다면, 대체 어떻게 두 가지 본능(아름다움, 사실로서 이러저러함)이 양립 가능할까? 왜냐하면 두 가지 본능은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근본적인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