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문득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 인권이 신장되어서 상대적 박탈감 어쩌구는 전혀 아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군대에 가면서 재계몽될 수 있는 기회를 아예 박탈당했다는 사실이 불쌍하다. 결국 문제는 한국 사회와 군대 그 자체인 셈이다. 아무튼 건전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유지하려면 군대 같은 곳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 학교와 군대는 영혼을 파괴하는 곳이다. 한 번 파괴된 영혼은 되살리기 매우 어렵다. 그런데 둘 다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거나, 혹은 "사회적인" 인간이라는 레테르를 받기 위해서 갈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억이나 주고 산 조선의 마지막 도장”이 자꾸만 떠오른다. 저 2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일까… 참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나라다. 도장을 사기 위해 2억만 쓴 건 아닐 테고 문화재청 직원들이 뉴욕까지 타고 간 비행기표, 비즈니스 티켓, 숙박비 등등 포함하면 몇천 만원 가량은 될 것이다. 한숨만 나온다. 이런 파렴치한 나라에서 산다는 게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공무원들은 보통 국적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는데, 대부분 (지금 탈세와 밀수 등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대한항공이다. 그리고 공무원에게 파는 대한항공 티켓은 이코노미 풀페어 티켓(뉴욕행 왕복으로 대략 400만원), 왜냐면 나중에 스케쥴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저렴한 티켓을 끊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죽으면 영혼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믿지는 않는데, 신을 믿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영겁에 가까운 무한한 시간을 살 수 있는 존재자가, 찰나의 시간에 불과한 생명을 선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내가 영혼이라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태어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 없을 것 같다. 한국에 대해 트위터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도 지겹다. 일본에서 왜 정치가 변하지 않느냐고, 미국에서 왜 총기가 안 없어지냐고 떠드는 것과 같다. 결국 사람과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직 행복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만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 대한 선망과 동경, 질투심을 가질 수 있다.

"미국에 모든 게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돌아오는 사람은, 실은 미국에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미국에 모든 게 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이방인을 초대해서 식사대접한다. 누군가를 초대해서 식사 대접하는 일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그것은 데리다가 말하는 것처럼 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치겠다는 환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의 집에서 편히 쉬다 가라는 자비일 수도 있으며, 내 집에 모든 게 있듯이 여기에 모든 것이 있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

사람이 늙으면서 추해지는 이유는 결국 자기 것이 아닌 전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르신이 조선의 백자나 수묵화를 모으는 것처럼 말이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옛사람이 조선의 유물을 모았을 때는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뉴욕까지 가서 도장을 구매하게 된다. 도장은 죄가 없다. 그걸 산 사람들이 죄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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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남중생 2018/05/05 13:40 #

    오옷,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하군요. 뉴욕에서 도장 구매하는 이야기를 곧 올리겠습니다!
  • Barde 2018/05/05 14:54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댓글을 다시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글은 제 단상에 불과할 뿐이니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 2018/05/08 01:1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5/08 13: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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