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간에, 선의.



지난 달에, 사회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오창동 씨는, 자신의 팔로워와 함께 불특정 다수를 향해 다음과 같은 트윗남겼다.

"종종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거나 진학하려는, 그리고 유학까지 염두에 둔 후배나 동료들을 만나게 되는데 혹시나 내가 조언해줄 상황이 될 때 하는 말은 '네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대학원은 절대로 가면 안 된다'임. 국내건 해외 유학이건, 주 40시간 노동 시간을 기준으로 학비와 생활비까지 모두 충당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절대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 부모님 돈이나 학생 개인의 과도한 노동으로 대학원 학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학위 이후의 커리어도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음. 이런 기준 충족하는 프로그램이 국내 인문사회 분야에는 별로 없겠지만."

그리고 나는 거기에 몇 개의 코멘트를 덧붙였는데,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까? 물론, 저런 조언을 하는 오창동 씨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는 펀딩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조언을 해도 타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막상 "내가" 펀딩을 받아야 하는, 그러나 당장 펀딩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오면 내가 내리는 결정은 오직 나의 책임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어떤 사람에게 "학위"는 가성비나 미래 설계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미국 대학원에 연 6000만 원씩 바치는 건 바보짓일 수 있다. 왜냐면 대부분 펀딩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원에 입학비를 포함하여서 연 1000만 원씩 바치는 건 바보짓인가? 아니면 완전히 바보짓은 아니지만, 1/6 바보짓인가?
(이어서)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의 선의를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저런 생각을 하는 오창동 씨--혹은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가 나의 앞에서 트윗한 그대로 말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물론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지만, 말하는 사람의 선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순수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우리를 향해 동의하지 않는, 혹은 여러 가지 맥락과 이유 때문에 동의할 수 없는 발화를 수행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선의를 가진 사람에게는, 확실히 그는 모든 사람의 삶의 이유와 동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나의 정확한 직관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이다. 그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어쩌면 결국에는 모든 이야기들이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처럼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여우는 선의가 없었으므로 두루미에게 넓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줬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솝은 여우의 마음 속 진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윤리가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