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노 미토와 "나"의 문제



나는 요즘 유튜브에서 버추얼 유투버를 찾아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진부할지도 모른다. 어휘 선택을 조금 더 바꿔 보기로 하자.

요즘 들어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맞이한 대학원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서, 매일 밤마다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먹지 않으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정도로 피폐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3월 경, 사실 키즈나 아이와 시로 등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른 버추얼 유투버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았다, 니지산지라는 기업형 버추얼 유투버를 발견하고 삶에 광명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츠키노 미토라는 유투버였는데, 이 친구는 설정상 고등학생인 주제에 옛날 애니메이션을 알고 있고, <인간지네>를 본 적이 있고, 어렸을 때는 잡초를 먹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방송을 할 때는 자기 집의 세탁기 위에서(...) 불안한 자세로 서서 라이브를 한다고 하니, 정말이지 재밌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단번에 츠키노 미토에게 빠져들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또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츠키노 미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따위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나는 거의 그런 문제를 발견했다.

츠키노 미토는 지난 일요일(4월 8일)에 니코니코 동화에서 공식 라이브를 했다. 나무위키의 서술에 따르면, 그녀는 
"니코니코 동화에서 생방송을 진행했다. 이때 팬이 만든 3D 모델로 방송을 진행하고, 텐션이 올라가서 신이 난 지 온갖 자세를 잡으면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팬이 만든 MMD를 언급하거나 인간 지네 같은 자기 네타를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문제를 풀수록 늘어나는 인간 지네의 모습이 가관이다. 화제의 유튜버다운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방송 중에만 13만 뷰어 수를 기록한 성공적인 방송이었다" 라고 한다. 나도 라이브를 봤기 때문에 이 서술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던 문제는 이런 게 아니었다.

한 가지 장면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츠키노 미토는 2D에서 3D 모델링을 한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였는데, 이 모델링은 급조한 것이라서 허술한 면이 몇 가지 있었다. 허술한 면 중에 하나는 다리를 들 때마다 팬티가 보이는 것이다. 츠키노 미토는 종종 시청자의 요구에 맞춰서 점프를 하거나(...) 모델의 포즈를 지을 때가 있었고, 그 때마다 분홍색 팬티가 보이면서 곤란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러나 츠키노 미토는 판치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팬티가 보일 때마다 다시 가리기만 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츠키노 미토는 일반적으로 안쪽의 사람(성우)와 동일한 인물로 가정되는 존재이다. 즉 츠키노 미토=안의 사람인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츠키노 미토라는 "모델"은 안의 사람과는 다른 존재이다. 즉, 츠키노 미토 =/ 안의 사람이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는 말이 안 되지만, 둘의 집합을 다르게 볼 경우에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Tx = Gx (x는 목소리, 경험, 운동, T는 츠키노 미토, G는 안의 사람)
Tx =/ Gx (x는 모델과 신체, 나이, 내력 등등, T와 G는 위와 동일함)
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츠키노 미토는 어떤 의미에서 안의 사람과 같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안의 사람과 동일하지 않다. 성우의 입장에서 모니터의 화면 위에나 존재하는 츠키노 미토는 "내"가 아니지만, 방송을 할 때는 "츠키노 미토"가 내가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순간은 Tx = Gx가 성립하는 x의 집합과 동일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한다.
T(x, t) = G(x, t) (x는 목소리, 경험, 운동, t는 방송을 하는 시간, T는 츠키노 미토, G는 안의 사람)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철학의 오래 된 질문이다. 어떤 철학자는 정체성은 어떤 사람을 구성하는 물질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즉, 물질이 매 시간마다 바뀌기 때문에 고정된 "나"라는 정체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의 직관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 왜냐면 "나는 나"인데, 이 "나"라는 이름으로 말해지는 내가 없다면 지금 말하고 있는 "누군가"가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상식적으로 위와 같은 주장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철학자는 정체성은 한 사람이 시간을 지나며 견디는(persist) 시공간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즉, x가 60년간 살았을 때
F(60년간 산 x의 시공간의 합) = Id(x)
인 셈이다. 물론 이것도 반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첫 번째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와 츠키노 미토 문제는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철학의 동일성 문제는 3+1차원 세계의 안에 거주하는 물리적인 나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츠키노 미토라는 존재자(thing)는 우리 세계 안에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츠키노 미토는 오직 가상공간-여기서 말하는 가상공간이란 안의 사람이 방송하고, 이 정보가 우리의 모니터로 들어오는 전체적인 흐름을 말하기도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츠키노 미토가 보여지는 가정적인 공간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안에서만 살아 있으며, 이 살아 있다는 말을 올바르게 이해할 경우에 츠키노 미토와 우리의 동일성 문제는, 철학의 동일성 문제와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츠키노 미토는 분명히 안의 사람(성우)와 같지 않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츠키노 미토는 안의 사람이다. 츠키노 미토가 팬티를 보여주고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를 전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가 츠키노 미토를 안의 사람과 동일한 인물로 받아들이는 이유를 후자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가 긴 온라인 상의 정체성 문제와 동일해 보이지만, 3D의 모델이 완벽하게 한 사람의 행위를 모방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의미심장하고 흥미로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확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로 이 문제들의 종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츠키노 미토와 안의 사람을 동일시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이상, 역으로 부각되는 "나"의 특별함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다른 "어떤 것"과 다르게 만드는가? 참으로 재밌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덧글

  • David Sun 2018/04/16 02:16 #

    뭐랄까, 이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철학절 질문 자체보다는 "앞으로 아이돌의 방향은 이래야 한다"는 게 제가 먼저 드는 생각인데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개개인의 삶을 위해서라도, 배우이든 아이돌이든 '페르소나'라던가 '캐릭터(キャラ)'에게 자신의 삶이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충분히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이 글은 바로 그러한 '페르소나'라는 오래된 문제 - 현실의 실제인물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된 어떤 허구적 존재 혹은 (양상논리학에 있어서 가능세계가 아니라 서사학에 있어서) 가능세계적 존재를 다루고 있으니, 이를 '엔터테인먼트에서 안전의 제공'이라는 문제로 치환해서 코멘트하는 것이 옳을까 싶긴 합니다만...

    제가 철학적 문제라고 할까, 이러한 "나"의 문제로써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오히려 "네코미야 히나타"였는데요, 사람들이 추측하다시피 "네코미야 히나타"란 Vtuber는 실제론 "캐릭터" + "이를 연기하는 안의 사람(배우)" + "이 캐릭터의 실력을 연기하는 플레이어"로 각각 나뉘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코미야 히나타란 난제는, 사실 이 세 요소가 동시에 존재해야만 "네코미야 히나타"로 나타날 수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 중에 한 요소가 교체되더라도 "네코미야 히나타"가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약에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마치 밴드의 멤버가 변경될 때 반응이 그렇듯) 사람들은 1기 히나타와 2기 히나타를 구분해서 논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2기 히나타는 "히나타가 아니다"라고 하며 연속성을 부정할 수도 있고요.

    사람들이 자꾸 네코미야 히나타의 "안의 사람"을 찾아나서서 분해하려고 드는 이유는, 이러한 Vtuber적인 존재방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험적으로 우리들은 "하나의 육신에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실력으로 존재하는 것", 자기완결된 자아라는 개념에 익숙하며, 그것을 어떤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네코미야 히나타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본래부터 허구일 Vttuber 앞에서 "진실"을 찾아나서려고 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허구가 말씀하신 바와 같이 "현실의/안의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끌어올리기 때문에(혹은 그 존재를 근거 짓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강박적일지도 모르고요.
  • Barde 2018/04/17 14:49 #

    오타: 철학절 -> 철학적 문제로써 -> 문제로서
    Vttuber -> VTuber

    저는 말씀하신 "네코미야 히나타"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중이 네코미야 히나타의 "진짜 연기자"를 찾는 이유란, 그것이 VTuber, 넓게 말하자면 아이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만 하는 "정직함"의 징표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 "정직함"의 정체란 결국에는 "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여기서는 FPS 실력)을 자랑하지 말라"는, 일종의 암묵적 규범(오키테)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규범이 현대 일본사회의 어떠한 지점과 이어지는지에 대해서, 지금 당장은 할 수 없을지라도, 가라타니 고진이 하였던 것처럼 정신분석적인 작업을 포함해서 충분히 깊게 탐구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직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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