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대하여

"그리고 난 사실 과고생들을 좋아한다 반갑거든! 그런데 일베를 하는 과고생이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는 과고남자의 심리를 잘 압니다 과고남자였기 때문이죠 졸라 선빵을 치면 됩니다 안녕 너도과고생이니 나도과고생페미니스트란다페미니스트"

라는 과학고 출신 학생의 트윗에, 나는 왜 "그 사람을 무시한다"는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음. 우리가 남이가?라는 트윗으로 인용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생겨서 그 위로 몇 가지 트윗을 덧붙였다. 내가 만약 공개 계정이라면 굳이 이 트윗들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할 필요가 없겠으나,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비공개 계정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글루에 정리하게 되었다.


일베도 하고 루리웹도 하고 여혐도 하는 평범한 20대 대학생을 굳이 계몽시킬 이유가 있다면, 그가 나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존재라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논리에 희생당해서 안타까울 정도로 그에게 출중한 재능이 있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후자를 만족하는 대학생이 과연 있을까 싶다. 전자라면 물론 일베를 하는 게 안타까울 테니까 계몽시킬 이유로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의 정치적 계보(?)를 얕보고 섣불리 "우리가 남이가!" 전략을 사용하는 건 효과적일 것 같지 않다. 왜냐면 실은 그의 집안이 50년 전부터 보수 정당을 지지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집안일 수도 있어서다.

"반갑다(뭐 결국에는 우리가 남이가지만)"는 감정이 과연 한 사람을 페미니스트로 만들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지는... 사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왜냐면 이것은 내가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의 교리를 지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직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사람의 (정치문화적) 인생에 급진적으로 개입할 권리가 한 사람에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건 기본적으로 내가 자유주의적인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여하튼 자유주의 전통 하에서 용인되지 않는 것은 어떠한 정치적인 입장이나 지향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과 권리를 묵살하고 짓밟는 반-관용적인 담화(라기보단 우기기에 가깝겠지만)와 폭력적일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론 나는 일베나 루리웹의 정서를 안 좋아하고 매우 혐오하는 측에 가깝지만, 그게 공론장에서 벌어지는 담화와 행위를 아예 묵살하는 게 아니라면(이를테면 일본의 극우와 재특회처럼), 그 사람의 정치적 입장과 지지정당, 사적인 커뮤니티 연루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게 내가 로티에게서 물려받은 한 가지 정치적 유산이다.


(2018.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