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소주 감상



영화를 즐겨 보기는 하지만 정식 루트 외에는 영화를 잘 찾지 않는 나에게 있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들은 해당 장소로 가는 지도를 찾을 수 없어 접근하기 어려운 대지와도 같았다. 설령 어둠의 루트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시네필)이라고 하더라도, 가와세 감독의 작품을 찾으려면 어느 정도 검색하는 품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유투브에서 (화질이 240p로 나쁘기는 했지만) 사라소주라는 장편 영화를 찾을 수 있었다. 곧바로 영화를 시청했고,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미로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의미에서, 영화의 미로 속에서 빠져나온 후에, 나는 이 영화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첫째. 대만 영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라소주의 배경은 나라(奈良)의 나라마치라는 오래 된 집들이 늘어선 유서 깊은 마을인데, 이곳에 서 있는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는 가옥들과 여관, 상점 같은 것들이 최근에 본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연히,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의 목조 건축 양식이 식민지를 거치면서 대만에 이식된 것일 테지만, 영화의 시간을 놓고 보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시간보다 훨씬 현대의 시간에 놓인 주인공들이, 바로 사라소주에 등장하는 두 남녀이다. 연애라는 면에서도 두 주인공은 어딘가 전자의 커플을 연상시킨다. 낡은 교복에 희미한 인상, 그리고 바뀌지 않는 여름의 풍경 같은, 어떤 의미에서 정체되어 있는 마을의 모습이 도시에서 살아왔던 내게 답답함을 불러 일으켰다. 그나마 나은 점은 네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서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감독의 연기가 훌륭했다. 최근에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사라소주에서 가와세 감독은 직접 남주인공의 엄마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자식을 잃어버렸고, 그 아이의 동생을 키우면서 새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 보통 감독이 연기하는 영화는 내 일천한 데이터베이스에서는 버스터 키튼이나 우디 앨런밖에 없는 나로선, 가와세 감독이 연기하는 모습이 시종일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배우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이 작품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장면을 언급해 보겠다. 결말부에서 그녀는 산통을 느끼고 집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감독은 배우인 남편의 손을 부여잡으며 힘들어한다. 실제로 그녀가 임신을 한 것도 아니고, 태어나는 아이도 그녀와 연관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화에서는 바사라 축제가 열리고, 유는 전통 복장을 입고 화장을 한 모습으로 선두에 서서 춤을 춘다. 축제의 열기가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즈음, 하늘에서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다른 사람들은 빗 속에서 마치, 마지막 축제인 것처럼 열심히 춤을 춘다. 나는 이 춤이 의식처럼 느껴졌다. 형이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숨 막히게 조용한 의식. 어쩌면 이는 일본인들이 운명에 순응하는 한 가지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