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와 한국 문학

마광수가 향년 6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나는 한 가지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한국의 학자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라는 사고실험을 해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김영건은 일본에서 철학 교수가 되고, 철학 교수인 모 씨는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유학을 가지만 철학 교수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면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게 훨씬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사오나 타다히사 같은 이름을 가진 마광수는—그의 영혼이 들어간 육신은—일본에서 국문학(일본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이수하지만, 이후에 윤동주라는 시인을 알게 되고 한국 문학을 전공해서 그의 시에 일본의 대학, 문화, 친구들이 끼친 영향에 대한 논문을 쓴다. 그러한 논문으로 교수가 될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고, 잘 하면 교수가 될 수도 있지만 일본 또한 인맥이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에 유명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면 안 될 수도 있다. 물론 문학에 대해서 평론을 하고 또 소설도 혼자 쓰겠지만, 재능의 부족함을 깨닫고 스스로 현대문학을 비평하는 데 자신의 활동을 한정한다. 나중에 퇴임을 하고, 그는 한적한 별장에서—행복할지 불행할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남은 생애를 보낸다.

트위터에서 본 것처럼, 나는 마광수가 장 주네 같은 작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네의 글쓰기에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지만, 마광수는 불행하게도 그런 재능을 갖지 못했다. 대신 타고난 시인이었던—아마 내 생각에 현대 한국인의 마음가짐을 퀴어적으로 재형성한 위대한 게이 시인이었던—기형도를 발굴하고(동아일보 신춘문예), 윤동주를 거의 최초로 조명한 국문학자였다. 이런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문학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일이지, 선구적으로 외설적이고 탐미적인 소설을 쓰는 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1991년에 「즐거운 사라」를 써서 출판했으며, 한국에서 태어난 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이후에는 다시 연세대에 복직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자살한 가장 큰 이유는 우울증이겠지만, 명예교수가 될 수 없고 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도—즉 생활이 궁핍하다는 사실도—자살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마광수의 죽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기 이전에, 그가 받아야 할 대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의 무덤 앞에서 어떤 애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마광수는 자신이 대속할 수 없는 죄를 십자가지었고, 이제 죄에 대한 책임의 몫은 온전히 그 시절의 한국인과 소위 문학이란 활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덧글

  • 흑범 2017/09/07 12:10 #

    서정범은 물론이고 이윤기도 외면하는 것 봐서는 답이 없어보입니다. 굳이 마광수가 아니더라도...

    그리스, 이탈리아, 로마쪽 작품들, 그리스권 작품들 많이 번역, 소개한 이윤기는 나름대로 이렇다할 구설수도 없었는데 왜 외면당해야 했을까요?

    뭐랄까 한국 문학계! 시, 소설, 문학쪽도 학맥, 인맥, 파벌로 움직이는 집단 같아보입니다. 아니면 포퓰리즘 대중영합주의에 충실하다던지...

    최인호나 이청준 장례식 때도 생각보다 인파가 좀 적었고, 언론에서도 별로 조명하지도 않더군요. 이청준 사망 때나 이틀정도 관련 뉴스들이 여러 방송, 신문에서 나왔지, 최인호 사망 때는 그냥 잠깐 자막, 스크린 한장이 전부였어요. 이윤기 작가나 서정범 교수는 아예 보도 안하는 방송, 신문들도 많았고요.
  • Barde 2017/09/08 13:35 #

    한국이 약한 게 특히 인문교양(리버럴 아츠) 측면에서 그런데, 특정한 분야에 대한 깊은 교양이나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프랑스 문학과 문화에 대한 애정은 엄청나고요. 그 문화들도 전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교양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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