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속의 뇌"에 대한 흔한 오해



우리는 종종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만약 우리가 미친 과학자에 의해 통 속의 뇌가 되었다면 어떨까?
그러나 이것은 원래 통 속의 뇌 논변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다시말해, 이는 통 속의 뇌에 대한 잘못된 적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원래 힐러리 퍼트넘이 "통 속의 뇌"를 고안했을 때 그는 물리주의자에 대한 반박을 의도했다. 즉, 이런 식이다.

1) 물리주의자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지각과 개념화가 없으면 인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 동시에, 물리주의자는 우리의 정신적 활동을 뇌의 전기신호로 환원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 속의 뇌는 2만 만족시킨다. 즉, 통 속의 뇌 논변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의 원인이 없더라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예를 상상해 보자.

3) 1)은 정당화의 방법에서 옳지 않다. 우리는 지각을 가지며, 대상에 대한 지각적 믿음은 타인의 지각적 믿음과 정합적으로 연관되어 간주관적으로 정당화된다.

이는 데이빗슨이 주장한 삼각법(triangulation) 논변이다. 여기서 어디까지나 삼각법이 비유로 쓰였다는 데 주목하라. 그러나 이것도 이런 식으로 반론될 수 있다.

4) 우리는 한 선량한 사람이 통상적인 세계 속에서 지각에 대한 믿음을 간주관적으로 정당화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제, 이 사람의 뇌를 통 속에 집어넣고 미친 과학자를 포함한 모든 물리적 대상을 파괴한다. 그리고 (물리주의자들이 그런 것처럼) 전기신호를 줘서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간주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 믿음은 명백히 틀린 것이다.

삼각법 논변은 총체적 회의론을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즉, 우리가 통 속의 뇌 논변에서 핵심적인 생각, 정신적 활동을 뇌의 전기신호로 환원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회의론을 극복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 회의론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그런 식의 '지각'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획득할 수 없어 보인다.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발견을 한 셈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어려워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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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인테일 2017/03/19 19:49 #

    사실 뇌를 통속에 넣지 않고도 잘못된 지각에 의한 잘못된 인식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죠. 이를테면 슈퍼에 가서 녹색 유리병 속에 든 액체를 마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 상태에선 자신이 참이슬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에 대한 자기 자신의 판단도 믿을 수 없겠죠.
  • Barde 2017/03/19 19:53 #

    물리주의와 회의론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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