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서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도 해야 하는 일: 이 세계의 구석에 감상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스크롤을 내리기 전에 한번 고민해 주시길 바랍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2월 27일은 택시에서 시작했다. 집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택시비가 많이 나왔지만, 버스의 배차간격과 인천국제공항에 몰린 사람의 수를 생각해 봤을 때 이는 탁월한, 까진 아니더라도 정답이었다. 나는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나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점심 즈음에 도착한 히로시마역에서 가벼운 점심을 사서 극장으로 향했다. 처음에, 핫쵸보리에 있는 핫쵸자에 갔지만 여기가 아니라 건너편의 살롱 시네마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도로 건너편에 있는 도큐 핸즈 건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영화 티켓을 끊고, 영화를 감상했다.

<이 세계의 구석에>의 전반적인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전쟁, 즉 2차 대전 중에도 열심히 일상을 살아낸 가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점점 나쁘게 전개되어 가는 와중에, 히로시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쿠레에 사는 스즈 가족은 온갖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때로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며 유머스럽게 일상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밝은 미래가 주어져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내는 스즈 가족의 모습은 아름답다.

둘째는 잔혹함과 책임의 문제다. 전쟁이 격화되며 사람들이 죽거나 크게 다치기 시작하고, 이는 스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즈는 하루미와 함께 손을 잡고 미군의 폭격을 피하다 땅에 박힌 폭탄이 터져 하루미를 잃는다. 그림을 그리던 자신의 오른손도 함께 잃는다. 그녀는 시누이로부터 비난을 받고 슬픈 생각에 빠진다. 전쟁, 전쟁, 그리고 또 전쟁이 이어진다. 종전을 한 달 앞두고, 스즈는 슈사쿠에게 "히로시마에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슈사쿠는 지금까지 행복하지 않았냐며 화를 낸다. 스즈는 슈사쿠의 "힘들어서 그래?" 라는 질문에 그렇다, 고 답하지 않는다. 스즈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히로시마도 결코 전쟁의 화마로부터 안전할 수 없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빛이 있고, 그 위로 절망을 부르는 열풍이 땅 위로 울려퍼진다.

히로히토 천황의 옥음방송을 듣고 스즈는 "최후의 한 명까지 싸우는 게 아니냐"고 물으며, "여기에 아직 다섯 명이 있는데. 왼손도 양 다리도 있는데!" 라고 외치며 종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부인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나 계단식 밭 위로 올라가-원래 이곳은 항구에 정박한 군함들이 보이는 곳이었다-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폭력에 굴복한 거였구나, 그게 이 나라의 정체였구나. 사실을 모른 채로 죽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먹고, 입고, 쓰는 물건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깨닫는다. 한쪽 손이 없는 그녀는 땅을 짚고 눈물을 흘린다.

이제야 바보같은 척을 했던 스즈는 전쟁이 무엇인지, 그 책임을 누가 져야만 하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그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는 와중에 스즈와 시누이는 미군이 먹다 남긴 잔반을 주저앉아서 먹는다. 종이조각이 들어 있는 잔반을 먹고 "맛있다!" 고 외친다. 덧붙여, 둘은 하루미가 죽은 자리에 초콜릿을 바친다. 그리고 스즈와 슈사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삶, 새로운 가족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반딧불의 묘>와 비교하면서 감상했다. 두 작품 모두 전쟁에 의해, 혹은 전쟁에 가담하는 와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한 가지 돌출하는 차이점이 있다. 스즈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가담했다. 이는 '대일본 부인회'라는 어깨띠를 매고 일장기(혹은 욱일기)를 들고 흔드는 스즈와 부인들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반딧불의 묘>는 전쟁에 의해 희생된 두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직 배경으로서만 다뤄질 뿐이다. 스즈는 앞으로 주어진 삶에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죽은 아이들>을 책임지려는 사람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전쟁에서 죽은 전범을 포함한 군인들을 생각하며 평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전후 체제의 한계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전쟁의 책임과 범죄. 죽은 사람과 살아남은 자. 절망과 슬픔과 기쁨과 희망은 영화 속에서 서로 교차한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운이 좋게도 과거에서 배울 수 있다면, 더 나아가서 비참한 사태를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는 <이 세계의 구석에>라는 영화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예술은 모두가 마주보기 두려워하는 일을 해 낸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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