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컨택트> 감상



<컨택트>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언어학자에 대한 영화다. 동시에, 컨택트는 인류와 헵타포드들의 만남이기도 하고, 영어 제목인 어라이벌Arrival이 의미하는 것처럼 지구에 알 수 없는 목적을 띠고 "도착"한 지적 생명체와의 대화를 의미하기도 하며, 원작 제목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처럼 '너'라는 2인칭으로 호명되는 딸의 인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서술한 문장을 헵타포드어로 번역해 보자. 이 문장은 처음부터 끝을 예상하고 쓰여진다. 처음에 한 획을 그을 때 마지막 획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으므로 주저함이 없다. 헵타포트에게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문자는 원환을 그리며 처음과 끝을 하나의 선으로 완성한다. 바로 여기에 영화의 주제가 있다.

영화에서는 몇 가지 설정과 함께 장면에 대한 각색이 이루어졌다. 우선, 헵타포드에 대한 오해로부터 발발한 군사적 위협과 위기, (스포일러가 되니 생략하지만) '전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헵타포드가 타고 온 검은색 '우주선'은 원작에서는 투명한 석영 체경(looking glass)으로 그려지며, 땅 위에서 몇십 미터나 떨어져 있지도 않다. 물리학자인 게리는 원작보다 영화 쪽이 덜 소심하고 적극적이다. 언어학자를 찾아 몬타나에서 버클리로 가지도 않으며, 주인공이 버클리의 재수없는 교수에게 산스크리트 어로 "암소"의 뜻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는다. 즉, 영화보다 원작이 훨씬 더 담백한 테이스트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들을 매료시켰으니, 테드 창이 얼마나 대단한 소설가인지 짐작이 간다.

헵타포드는 원작에 따르면 <헵타포드 A>와 <헵타포드 B>를 사용하는데, 전자는 음성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언어에 대응하는 문자 체계를 가리킨다. 문자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처음에 한 획을 그을 때 마지막 획이 어떻게 끝날지 안다. 한자와도 비슷한데, 한자는 처음에 획을 그을 때 마지막 획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다. 한 문장을 쓸 때는 사정이 달라지지만, 문자 하나를 놓고 봤을 때는 한자와 닮은 점이 많다. 그리고 원작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아라비아 문자도 <헵타포드 B>와 비슷하다. 처음에 획을 그을 때 끝을 알고 서예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아라비아 문자는 위 그림의 문자와 닮아 있다. 하지만, 이는 숙련된 서예가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헵타포드처럼 빠른 시간 안에 글을 쓸 수는 없다. 인간의 시간과 헵타포드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헵타포드 B>는 목적을 가진 것처럼 움직이는 문자들로 이루어진 표의언어다. 빛이 물 속의 한 지점을 향해 '마치 어느 길이 가장 빠른 길인지' 계산하면서 움직이는 것처럼, <헵타포드 B>의 문자도 문장의 최종적인 의미를 향해 달려간다. 주인공인 루이즈는 헵타포드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삶을 미리 보게 된다. 그녀는 아이를 가지고,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비록 끝을 알고 있을지라도 자신의 딸과 함께하는 삶이 아름다운 것처럼, 헵타포드의 언어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며 아름다워지려 애쓴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미를 "끝이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form of finality without an end)"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헵타포드가 쓰는 문자는 미를 체현한다. 만약 언어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 언어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닮아 있을 것이다.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우리는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인간만의 길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