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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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이 되었다. 올해는 저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방명록을 만들겠습니다. 혹시 제게 전할 말이 있거나, 용건이 있거나, 아니면 일을 부탁할 경우는, 이 글 밑에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인(lerisia)으로도 연락 가능합니다.

올해 목표: 학회 참석하기, 지면에 중편 이상의 소설을 발표하기. 야마노우에 호텔에서 숙박하기. and also...

오늘의 음악: Homecomings 「Songbirds」, 오자와 켄지 「굳센 기분 그리고 사랑強い気持ち・強い愛」 (자막은 魔法的 버전)





10. 21. (부제: 내청춘은 이걸로 끝)



내청춘에서 제일 식이 되는 순간은 오리모토 카오리하고 히키가야 하치만이 학교 간 합동 이벤트를 위한 회의에서 ‘다시’ 만나서 서로에 대한 인상을 갱신하는 장면이다. 오리모토는 카페에서 있었던 그 일 뒤로 그녀 나름대로 하치만에 대한 평가를 바꾼다. 그리고 하치만도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상을 새로운 인상으로 덧칠한다. 이건 결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보다도 고귀한 순간일 것이다.

내청춘은 하치만이라는 평범한 인간이 고백의 실패로부터 원점으로 돌아와서, 봉사부를 통해 새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진부함(banal)과 평범함을 받아들이고 연애라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시간까지를 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은 그가 여주인공들과 나누는 대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으로 드러난다기보단, 오히려 말들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인간다움을 침묵 속에서 더듬어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동시에 이 작품, 내청춘은 영혼의 성장을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다시 말해 예술 작품으로서 특이점이나 작가의 욕망, 욕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나타난 대중 취향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연애를 왜 하는가? 왜 해야 하는가? 그저 사랑하기에 연애를 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바로 그 문제였던 연애의 문제는 치유적으로 해소되면서 시나브로 사라진다.

내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처음 언급되는 마들렌에서 그가 기억하는 방대한 양의 세밀한 아름다운 기억들, 집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추억과 같은 자세하고 사소한 기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주인공에게 놀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늘 세상에 냉소적이며 인간을 철저히 불신하는 하치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인상을 갱신, 차이를 발견하고 완벽함과는 반대로 실수를 반복할지라도(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말한 부분보다 말하지 않은 비밀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태 속에서 그 모든 사실들이 처음부터 주어져 있었던 것처럼, 한 사람의 독자인 나는 놀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소를 바라보면서 마들렌이 녹는 쾌감을 향유한다.

따뜻한 홍차 속에서 녹아가는 것은 마들렌이다. 그 향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례함과 유례함



예전에, 올해 초 정도에 시낭송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쩌다 보니까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제인 허쉬필드의 수학이라는 시를 읊었고, 주위 반응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나 자신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시낭송이 끝나고 오래 된 가게를 둘러보면서 벼룩시장이 열리는 광경을 구경하다가, 나는 물을 쏟았다. 나는 황급히 휴지로 물을 닦았고, 그러다가 시계에 물이 약간 묻은 걸 확인하게 되었는데, 휴지를 버리면서 그 가게에 있었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미안해 하시는 게 맞는데."
나는 휴지를 모아 버리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곧바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오래 된 거리를 걸어 내려가면서 작은 구멍가게에 들러서, 초콜릿과 두유 한 병을 사서 내려오면서 두유를 마셨다.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에 두유는 금방 식었고 두유의 온기를 느끼던 내 손은 얼어붙었다. 나는 역으로 내려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국인이 다른 민족에 비하면 무례하다는 말을 인터넷 상에서 종종 본다. 실제 현실에서도 무례한 사람을, 운이 나쁘게도 종종 본다. 나는 그들의 행위 의도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자기중심적이고 천박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무례한 측면만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예의가 바른데, 정확히 말하면 규범에 익숙한 공동체 속에서 특정한 예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잘 챙겨주고 눈빛만 봐도 감정을 알 수 있고 상냥하고 신사적이며... 나는 이를 무례함에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유례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무례함이 다양한 무례의 태도를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는 것이라면, 유례함은 다양한 유례의 태도를 개념화하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 여행을 갔을 때 나는 한인 민박에 묵었다. 정말 좋은 추억이었고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심지어 뮤지컬의 가격에 대하여 의견이 전혀 다른 민박 스태프가 있었는데도 그랬다. 영국에서 만나는 사람들, 주로 백인은 무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유례하지도 않았다. 대체로 천박하지 않았음에도, 어떤 종류의 배려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에 사람이 있다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대화하고, 화폐를 교환하고, 맥주를 마시고, 그리고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셈이다. 프랑스어 중에 vis a vis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식이었다. 나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영국에 체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라는 나라가 내게 준 인상은 엄청난 수준이다. 아마, 첫인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다음에 여행으로 유럽을 갈 기회가 있다면 다시 영국으로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다.
아마도 무례함과 유례함 사이, 작고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열린 큰 사회 속에서 연결의 희망을 발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구체적인 사유를 위해서는 단단하고 확실한 지반이 필요하다.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자면, 이는 동의(agreement)에서 출발하는 명제들이다. 난 사회 속에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 살아야 하고, 동시에 세금을 내며 건강보험과 연금의 혜택을 받는다. 자아의 문제에서라면, 단순히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탁하는 닫혀 있는 자아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아를 정립하고, 후자를 전자로부터 준별하는 식으로 객관성의 고리를 이어 나간다. 그게 좋은 사회라고 믿으며, 동시에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모두의 행복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리주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속에는 타자를 향한 우정과 사랑이라는 보물이 잠들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물을 흘린 일에 대해서는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물방울들이 증발해서 하늘로 돌아가 버렸겠지만. 벌써 가을이다. 붉고 노랗게 물든 나무의 낙엽이 지는 걸 보면서 나는 공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작가들에게

나는 인간이 너무나 혐오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려고 애쓰는 겁니다. 당신들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거니와, 맥주잔 위에 남은 엷은 거품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고 그저 하염없이, 남은 곳에서 온기를 찾아가며.)

내게 유일한 위안이란,
10월 26일에, 에리사와 세이코의 신작 단편집이 킨들에 들어온다는 것이고, 또는
다음 날에 마이조 오타로의 소설 『나는 당신 눈동자의 사과』가 나온다는 사실.
그 뒤에는 아무 것도 없겠지만, 어느 날
베일 정도로 추운, 공기가 크리스털처럼 맑은 날에
친구를 만나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불판 위에서 떠도는 연기가 친구의 입술을 가리고 그는
여러 화제들이 겹치는 장소에서 이렇게 말하겠지.
“마이조 오타로는 천재라”고.

식육을 반대하는 비건들이 마을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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