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로 돌아가신 타케모토 야스히로, 이시다 나오미, 니시야 후토시 등 36명 애니메이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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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이다. 올해는 저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방명록을 만들겠습니다. 혹시 제게 전할 말이 있거나, 용건이 있거나, 아니면 일본어 번역 업무를 부탁할 경우에는, 이 글 밑에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인(lerisia)으로도 연락 가능합니다.

오늘의 음악: 아이묭 「벚꽃이 떨어지는 밤은」 (싱글), 나카무라 카호 「아이밀(aimiru)」






상윳타니까야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만동자(鬘童子)는 혼자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서 연좌(燕座)하고 사색하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세상은 영원한가,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 세존께서는 이런 소견들은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으며, 나는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면 나는 그 분을 따라 범행을 배우리라.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그를 힐난한 뒤에 그를 버리고 떠나리라.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면, 나는 그분을 따라 범행을 배우리라.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그를 힐난한 뒤에 그를 버리고 떠나리라.”

존자 만동자는 해질 무렵에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혼자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서 연좌하고 깊이 사색에 잠겼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가,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 세존께서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저는 그것을 참을 수 없으며 저는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분명하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알고 계신다면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만일 세존께서 ‘세상은 영원한가’에 대해 분명하게 알지 못하신다면 ‘나는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 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하게 아신다면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하게 알지 못하신다면 ‘나는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물으셨다.
“만동자야, 내가 이전에 혹 너에게 ‘세상은 영원하다. 그러니 너는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라’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전에 혹 너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 그러니 너는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라’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동자야, 너는 이전에 혹 내게 ‘만일 세존께서 저에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동자야, 너는 이전에 혹 내게 ‘만일 세존께서 저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겠습니다’ 하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동자야, 나도 이전에 너에게 말한 일이 없고 너도 또한 이전에 내게 말한 일이 없는데, 너 미련한 자야, 어찌하여 너는 부질없이 나를 모함하고 비방하느냐?”

이에 존자 만동자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꾸지람을 듣고 마음으로 근심하고 슬퍼하며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말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물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세존께서 만동자를 면전에서 직접 꾸짖으신 뒤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에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몸에 독화살을 맞은 것과 같다. 그가 독화살로 말미암아 매우 심한 고통을 받을 때에 그 친족들은 그를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며 그의 이익과 안온을 위해 곧 의사를 청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자.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그 사람이 어떤 성ㆍ어떤 이름ㆍ어떤 신분이며, 키는 큰가 작은가, 살결은 거친가 고운가, 얼굴 빛은 검은가 흰가, 혹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가, 찰리족인가 혹은 바라문ㆍ거사ㆍ공사의 종족인가, 동방ㆍ서방ㆍ북방 어느 쪽에 사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이 산뽕나무로 되었는가, 뽕나무로 되었는가, 물푸레나무로 되었는가, 혹은 뿔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궁찰(弓扎)이 소 힘줄로 되었는가, 노루나 사슴 힘줄로 되었는가, 혹은 실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의 색깔이 검은가, 흰가, 붉은가, 혹은 누른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줄이 힘줄로 되었는가, 실로 되었는가, 모시로 되었는가, 혹은 삼으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화살이 나무로 되었는가, 혹은 대나무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살촉을 화살대에 고정시킬 때 소 힘줄을 썼는가, 노루나 사슴 힘줄을 썼는가, 혹은 실을 썼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화살 깃이 매 털로 되었는가, 보라매나 독수리 털로 되었는가, 고니나 닭털로 되었는가, 혹은 학의 털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살촉이 넓고 길쭉하며 얇은 비(錍)모양인가, 창 모양인가, 혹은 양쪽으로 날이 선 칼 모양인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살촉을 만든 사람이 어떤 성ㆍ어떤 이름ㆍ어떤 신분이며, 키는 큰가 작은가, 살결은 거친가 고운가, 얼굴빛은 흰가 검은가, 혹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가, 혹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의 어느 쪽에 사는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은 결국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 중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세존께서 나에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지 않으시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견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런 견해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이런 소견이 있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가 있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니라.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는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니라.
‘세상은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남[生]이 있고 늙음[老]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있으니 이렇게 하여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긴다.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세상은 끝이 있다. 세상은 끝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하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견해를 가진 자도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있으니 이렇게 하여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기느니라.

‘세상은 영원하다’고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치와 맞지 않고 법과 맞지 않으며, 또 범행의 근본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세상은 끝이 있다. 세상은 끝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하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다’고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치와 맞지 않고 법과 맞지 않으며, 또 범행의 근본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느니라.
그러면 나는 어떤 법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나는 이런 이치를 한결같이 말하나니, 곧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발생[苦集]과 괴로움의 소멸[苦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자취이니, 나는 이것을 한결같이 말한다. 무슨 까닭으로 나는 이것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이것은 이치와 맞고 법과 맞으며 또 이것은 범행의 근본으로서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같이 이것만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하여야 할 것은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가지고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정교하지 않지만 작은 논의




내가 철학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들이 대화의 말미 정도에 갖게 되는 의문 중의 하나는 "분석철학을 전공했으면서 왜 분석철학을 좋아하지 않느냐?" 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전적으로 오해에 기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륙철학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그들이 갖는 의문은 "왜 당신이 가진 주제를 가지고 분석철학의 방법론을 사용하냐?" 는 것인데, 이것도 심각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오해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런 오해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하고, 내가 하려는 철학이 분석철학적 방법론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보려고 한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니 이 글에 엄밀한 논증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보통 철학적 방법론은 철학자가 다루려고 하는 주제에 맞게 정의된다. 예를 들어서 논의의 주제가 좁다면 분석철학의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되고, 큰 질문(Big Question)을 하고 싶다면 대륙철학의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이야기가 갖는 함정은, 좁은 영역에서 분석철학을 했을 때 정작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좁은 영역에서는 작은 결과물밖에 나올 수가 없다. 우리는 애초부터 그런 것들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좁은 영역에서 큰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큰 질문을 다루면 큰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기대에 부응하는 경우는 사실 적다. 왜냐면... 철학이라는 분과 학문에서 큰 질문은 대답을 기대하고 던져지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법론을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좀 멋대로인 태도를 취한다.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의 접근을 한 사람이 없다는 점에는 종종 놀라움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반대로 접근했을 때 철학에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비유를 드는 게 빠를 것 같은데, 만약 빛입자를 기술하고 연구할 때 고전역학을 들이밀고 거시적 세계에서 질량을 가진 물체의 운동을 기술할 때 양자역학을 들이민다면 이론물리학자는 그런 시도를 집어치우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 난 고전역학을 분석철학이라고 생각하고 양자역학을 대륙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작고 좁은 영역에서는 우리의 상식을 배반하는 함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함수를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는 함수를 사용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좁은 영역에서 철학적 논의를 하기 위해서 대륙철학의 방법론을 동원하고, 정말로 중요한 큰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 분석철학의 방법론을 동원하려고 시도한다. 예컨대 메타윤리학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는 분석철학의 방법론을 이용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삶의 문제라거나 자살의 문제 같은 것들. 이것은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가 얼마나 세밀한 논증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파악하면 전모를 알 수 있다. 까뮈는 주로 대륙철학으로 분류되지만, 까뮈 만큼 논리적으로 자살의 문제를 풀어낸 사람도 없다는 점은 적어도 그 세계 안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이지만 논의의 영역을 한정하고 다수의 컨센서스에 따라서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논리학의 문제를 다루는 데 대륙철학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이나 질적인 부분을 다루는 데 논리(학)을 들이밀 수도 없다. 질적인 부분을 논리적으로 환원했을 때 우리에게 남는 잔여들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큰 질문을 다룰 때 분석철학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큰 질문들이 다루는 인간의 어떤 부분들은 매우 합리적이지 않은가? 나는 철학하는 사람들과 장시간 대화를 하면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소유한 고정관념을 깨 부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언제나 듣게 되는 이야기는 "분석철학을 하지는 않을 거에요" 라는 식의 말이었고, 그런 말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스피노자의 말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고귀한 것은 드물 뿐만 아니라 어렵다. 철학을 잘 한다는 말은 단순히 철학 공부를 잘 했다는 말과 동일하지 않고 후자는 전자의 어떠한 조건도 될 수 없다. 나는 그로텐디크의 말을 떠올린다.

"어느 수학자가 IHES를 방문했는데 도서관에 책이 매우 적었다. 그래서 그로텐디크에게 도서관에 책이 왜 이리 없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그로텐디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을 씁니다.""

메일링 연재중

현재 2회차까지 글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7회 분량의 글이 남아 있습니다.
문의는 cocobolo_@naver.com
위 메일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곧 10만명


블로그 방문자 수가 곧 10만명을 달성할 것 같네요. 작은 이벤트라도 하고 싶지만 이벤트를 열 정도로 여유롭지도 않고 상황도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네요. 저는 9월 초에 백신을 맞게 되었습니다.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예정된 2차까지 맞으면 이제 유효기간이 끝난 여권을 새로 만들고 외국으로 나갈 계획입니다. 마일리지 16000 포인트를 빨리 쓰기 위해서라도 일본에 한번 가야 하는데, 일본의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만약 티켓 발권을 하더라도 내년 2월 이후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발권을 했는데 입국이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한국보다 심각한 일본의 코로나 상황이 하루빨리 나아져서 외국인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 남겨주신 분께 손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편지는 두 분까지 쓸 수 있으니 2명, 선물은 1명입니다.

제 연락처는 이미 이글루에 여러 차례 공개했으니 따로 연락처를 남기지는 않겠습니다. 비회원은 제 연락처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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