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로 돌아가신 타케모토 야스히로, 이시다 나오미, 니시야 후토시 등 35명 애니메이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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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이 되었다. 올해는 저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방명록을 만들겠습니다. 혹시 제게 전할 말이 있거나, 용건이 있거나, 아니면 일본어 번역 업무를 부탁할 경우에는, 이 글 밑에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인(lerisia)으로도 연락 가능합니다.



오늘의 음악: Boards of Canada 「Turquoise Hexagon Sun」 (1998), 세나 와타루 「혼자 하는 여행」 (feat. 사나)






9. 22.

꿈일기… 이긴 하지만 중요한 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꿈에서 블루마스와 나와 상경(에 대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함)이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평수는 20평 정도 되는 작은 집인데 기본적인 가재도구와 가구는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실제 살고 있는 집이라기엔 많이 모자라는 곳이었다. 그건 집이라기보단 오히려 심상의 풍경을 묘사해서 보여주는 장소처럼 보였다.
집에서 우리(나와 상경)는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블루마스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우리가 집에서 나가는 데 동의했고 우리는 짐을 싸서 블루마스의 집에서 나왔다. 블루마스는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그런 것도 우리가 집을 나오는 한 가지 이유였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나간 뒤에 그는 메뚜기처럼 보이는 곤충을 튀겨 먹으면서 오래 전에 먹었는데 맛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 아마도 집에서 자기 전에 블루마스의 글을 읽어서 꿈에서도 나타난 게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중요한 꿈은 아니지만 블루마스의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 특히나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 꿈이었다. 나는 지금도 블루마스가 선물한 던킨 도너츠의 찻잔을 가지고 있다. 아무쪼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제로년대 단상



단상이라고 쓰긴 했는데, 잡감에 더 가깝다.

한때 제로년대라는 시대가 있었고, 한때 가라타니 고진과 아즈마 히로키라는 걸출한, 그러나 전자는 철학자가 되었고 후자는 회사 사장겸 우익 비평가가 되어버린, 비평가가 있었고, 한때 그것들을 좇던 한국 국적을 가진 공부인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에 '있었다'라는 술어를 붙이는 이유는 제로년대, 가라타니 고진과 아즈마 히로키라는 고유명(=이름), 공부인이라는 단어가 제각기 표상하고 있던 아름다움 혹은 가치가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동시에 서구 사상가의 이론을 반복하면서 변죽을 울리고 있는--한국의 학계에서 가라타니 고진과 아즈마 히로키는 이제 다른 서양인들의 이름에 가려서 거의 읽히지 않는다. 나는 해러웨이라는 이름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즈마 히로키의 겐론은 거의 망했고, 철학의 기원을 비롯한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 서적은 철학 연구자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않으며, 공부인들은 생활에 바빠서 비평이라는 한때 숭고하였지만 이제는 무의미한 작업에 더이상 열중하거나, 읽고 쓰지 않는다.

폐허가 된 장소에서 나는 아직도 읽고 쓴다. 공부에 과거 비평이 가졌던 것만큼의 의미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어진 목표를 생각하면서 공부한다. 영어 논문을 읽고 영어 원서를 읽고 영어 원서에 대해 사람들이 쓴 논문을 읽는다. 금강경과 화엄경과 벽암록과 초기 불교 경전을 필사하던 수많은 스님은, 자신의 "공부"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필사를 했을까? 내가 필사를 하고 있는 스님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에이씨, 이런 거 하고 있을 시간에 마을에 내려가서 재밌게 놀거나 밥 먹고 참선이라도 하면 화두 수행에 도움이라도 될 텐데. 대체 필사를 왜 해야 하는 거야? 애초에 왜 스님이 된 거지?"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주지스님도 모르고 조주도 남전도 모르고 아난다도 부처님도 모른다.

"백장(百丈) 스님이 법문을 하면 언제나 듣고 있던 노인이 있었다. 어느 날 법문이 끝나 대중이 모두 흩어졌는데, 그 노인은 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백장이 물었다. “그대는 뉘신가?” 노인의 대답은 믿을 수 없지만,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다. “저는 과거 가섭불 시대에 이 산에 주석하여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학인이 ‘위대한 수행자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답했다가 그 과보로 오백생을 여우 몸을 받아 이리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처지를 바꿀 수 있도록 한 말씀 해주소서.” 그러면서 자신에게 던져졌던 물음을 다시 던졌다. “위대한 수행자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백장 스님이 대답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 노인은 이 말에 크게 깨쳤고 백장은 노인의 부탁대로 그가 벗은 여우 몸을 찾아 다비해주었다고 한다."

불매인과라는 제목의 이 공안을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모든 것이 될 것 같은 순간을 맛보는 인간은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한다. "스님이 된 일은 필연적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연기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정답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것은 잘못된 대답이다. 필연적이라는 말은 반드시 연기에 의함, 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므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스님이 스님이 된 것은 필연적인 일도, 그렇다고 우연적인 일도 아니다. 위대한 수행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백장 스님의 대답은 그러므로 선사의 가르침이다. 물론, 그런 백장 스님의 뺨을 인정사정 없이 갈긴 황벽 스님의 행위 또한 우리에게 가르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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