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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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이 되었다. 올해는 저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방명록을 만들겠습니다. 혹시 제게 전할 말이 있거나, 용건이 있거나, 아니면 일을 부탁할 경우는, 이 글 밑에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인(lerisia)으로도 연락 가능합니다.

올해 목표: 대학원 입학과 공부. 장편 소설을 하나 쓰고, 지면에 중편 이상의 소설을 발표하기. and also...

오늘의 음악: 코토링고 「민들레」, 험버트 험버트 「힘내라 우리 형」




여행

교토 아라시야마에서

요즘 이글루스 여행 카테고리를 보다가, 과거의 나는 어떤 여행을 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간 베이징이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사를 통해서 간 평범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제주도에 놀러 갔고,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는 영재원 친구들과 함께 일본에 놀러 갔다. (그 친구들은 나중에 모두 대학교에서 과학을 전공했다. 아마 내가 유일하게 영재원 출신으로는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처음 간 일본은 내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처음 승선한 거대한 여객선, 따뜻한 온천, 낯설지만 맛있는 음식, 환대와 밤 중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든 것들이 나를 새롭게 디자인했고, 그 경험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계속해서 다시 돌아가야 할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나는 대학에 들어갔고, 2년간 공부를 한 뒤에 일본으로 놀러 갈 돈을 모았다. 그리고 2013년,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첫 여행지는 홋카이도였고, 과감하게도 나는 6박 7일간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치토세 공항에서부터 출발하여 삿포로, 아사히카와, 오비히로를 일주하며 홋카이도를 기깔나게 둘러 보는 여행이었다. 여행기는 나의 예전 블로그에 적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행지에서 제대로 돈을 쓰지 못했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당시에 엔화가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1200원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는 했지만,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돈을 모았다면 즐거운 여행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 후로도 미친 듯이 일본에 놀러 갔다. 거의, 말하자면, 캘린더에 틈만 생기면 일본으로 놀러 갔다. 나의 5년 여권에는 일본으로 가는 출국도장과 입국을 허가하는 입국도장이 하나둘 찍혀 갔고, 90일간 체류를 허락하는 비자는 여권 곳곳에 노트북에 붙이는 스티커처럼 달라 붙어 있었다. 혼슈, 큐슈, 오키나와, 홋카이도를 차례차례 점령했다. 그러다 작년에 1박 3일간 도쿄에 일 때문에 다녀온 뒤로 일본여행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다.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9월에는 잠깐 시간을 내서 영국에 다녀왔고, 유럽에 다녀온 탓인지 기분이 매우 고양되어 있었다. 비록 10월과 11월을 지나며 감정이 다시 가라앉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내 여행은 항상, 절대적으로 도피성이었다. 현실의 가짜-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에서 원기를 선물받은 다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게 한국은 유일하게 여행이 불가능한 국가였다. 같은 언어가 통하는 곳에서 여행이 가능할까? 최근에는 가족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자고 권유를 해 온다. 내게 통역과 가이드를 부탁하기 위해, 아니면 겨울이라서 온천에 가고 싶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어떤 여행을 했는지 둘러본다. 구글 맵에서 영원히 내가 있어야 할 장소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떠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구글은 그 곳으로 가는 길을 내게 알려준다.

삶의 즐거움 겸 근황



11월 말까지 해결하고 처리해야 되는 일이 몇 가지 있어서, 그것들을 열심히, 청소용 플라스틱 막대기로 방 끝에 집을 짓고 있는 먼지를 훑어내는 것처럼 후다닥 해치웠더니 12월이 되었다. 그러면서 영화도 몇 편 보고, 감상도 한 편 적었으며, 글도 모 잡지에 기고하기로 약속했다(아쉽게도 돈을 안 받을 것 같지만, 이번 일은 특별히 받지 않을 생각이다. 보상으로서 뭐라도 준다면 나야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사람들과 약속이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들었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주로 듣기만 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샤워를 여러 번 했더니 지능이 20 정도 올라갔고, 그래서 내가 미래에 어떤 공부를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해 보았다. 고민의 결과, 물론 나중에 가능한 안이 늘어날 수도 있고 아예 원안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2가지 가능한 안이 추려졌다.

1. 미학(=철학)

미학을 하게 될 경우 갈 곳은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T대의 미학&예술학 연구실) 코스웍을 수료하면 학위를 따기 위해서 논문을 써야 하는데, 돈 문제가 없는 이상 박사논문을 못 쓰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박사논문을 쓰고 학위를 딴다고 해도 평생 직장을 잡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운이 좋다면 일본에서 적당한 종합대학에 전임강사 자리를 얻을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한국에 돌아와서 시간강사 생활을 몇 년간, 길게는 10년 이상 해야 할 것이다. 뭐, 지금 생각해 봤자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이 문제를 블로그에서 논의하지는 않겠다. 아 참, 여기서 말하는 미학은 미술사 연구는 아니고 분석미학이다.

2. 문학(=비평)

문학을 연구하게 될 경우 갈 곳은 여러 군데가 있다. T대에서는 비교문학&문화 연구실, 현대문예론 연구실 정도가 있고, K대에서는 인간&환경학 연구과의 모 선생님 연구실, 영미권으로 가게 되면 선택지는 무한하다. 그런데 이 케이스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낮은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유학생이 연구실에서 할 일이 매우 많기 때문에, 소설을 쓸 시간을 만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선생님들 나이가 많다. 정년퇴임을 해 버리면 지도받을 교수님이 없어진다. 매우 난감한 일이다. 셋째, 비평을 하려면 굳이 문학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문학 연구는 필요조건이 아니라 비평의 충분조건이다. 요즘 일본에서 비평하는 사람들 중에서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현대비평의 판이 옮겨 가고 있으며, 수동적으로 비평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칭찬에 반응하기만 했던 작가,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는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즈마 히로키와 사회비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우노 츠네히로가 있으리라.

내가 이것들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만족한다는 보장은 없다. 뭘 하든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며, 선생님들이 으레 하는 말씀처럼 "잡마켓에서 나를 팔기 위해 몇 년간 발품을 팔며" 씁쓸한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과연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공부하는 과정 그 자체, 책읽기와 공부에서 진정하고 참된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해가 바뀌기 전에 나가 떨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다.

도망자, 처벌, 그리고 후쿠시마: <해피 아워> 감상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는 이상하다. 먼저 러닝타임을 보자. 왓챠에서 <해피 아워>를 검색하면 5시간 17분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세상에, 다섯 시간이나 영화를 볼 정도로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일본에는 있다는 말일까? 궁금해져서 이 영화를 감독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인터뷰(일본어)를 읽어본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영화가 너무 길어서 시간이 없는 혹은 인내심이 부족한 관객이 견딜 수 없다고 느꼈는지, 3시간 몇십 분짜리로 사소한 장면을 편집한 버전이 두 가지 있었다고 한다. 세 시간 정도라면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볼 여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텝과 배우들이 참석한 상영회에서 다섯 시간짜리 원본이 가장 낫다는 결론을 만장일치로 내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부담에도 불구하고 5시간 17분 버전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을 한 이유가 납득이 간다.

둘째로 배우들의 이름이 이상하다. 사쿠라코, 준, 후미, 아카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나는 나무위키를 열어서 “유루유리”를 검색해 보았다. 만화의 주인공 4인방 중에 아카자 아카리가 있고, 학생회의 임원 중에 오무로 사쿠라코라는 친구가 있다. 준과 후미는 어디서 왔을까? 하여튼, 왜 등장인물의 이름이 절반이나 겹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각본가에게 직접 “왜 이름을 오타쿠처럼 지었나요?”라고 묻지 않는 이상, 이름의 비밀을 파헤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셋째로, 주연 배우들이 모두 신인이다. 신인을 기용한 이유를 살펴보니 자신의 “워크샵”에 참가한 일반인 중에서 연기를 잘 할 것 같은 사람을 골랐다고 한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네 명의 배우들은 2015년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에서 주연여우상을 수상했다. 배우가 천재거나 감독이 천재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요약하기 어렵다. 왓챠에 올라와 있는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30대에 접어든 네 명의 친구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다. 그러나 한 명이 갑자기 사라지자 남겨진 셋은 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나긴 밤을 지새우며 묻는다. “네가 되고자 했던 네 자신이니?””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이게 다섯 시간 짜리 영화를 제대로 요약한 것 같지도 않다. 저기서 사라진 한 명은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 이혼 소송을 하고 있으며, 남겨진 셋 중에 한 명은 이미 이혼했고, 두 명도 이혼의 위기에 처해 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나긴 밤”은 한 사람이 견디기에 너무나 길고,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도 정상인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런 게 과연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우카이라는 인물이 있다.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처럼 돌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미는 우카이를 자신이 일하는 센터로 초대하고, 그는 신체의 중심을 찾는 워크샵을 연다. 워크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객은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워크샵은 거의 편집되지 않으며 극 중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워크샵은 두 가지 의미로 의미심장하다. 첫째로, “중심”을 찾는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그리고 같이 손잡고 일어나게 만든다. 하지만 이후에 펼쳐지는 내용은 각자가 지탱해 온 중심이 무너지고, 와해되고, 형해화하는 지극히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준은 고집스러운 남편 때문에 이혼을 완수할 수 없으므로 배를 타고 오사카로 도망친다. 아카리는 클럽에 가고, 후미는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다. 사쿠라코는 남편 몰래 바람을 핀다. 각자가 가지고 있던 중심이 무너지는 경험은 고통스럽다. 마치 동일본 대지진이 일본을 크게 흔들고, 후쿠시마에 있던 발전소를 파괴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재현 불가능한 방식으로 망가뜨린 것처럼. 우카이는 이와키의 해변가를 산책하며 쓰러진 기물과 폐물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make stand). 이것은 준을 돕는 우카이의 행위를 경유하면서 반복된다.

둘째, 센터의 초대를 받아서 신인 소설가와 소설을 낭독하고 대담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카이는 갑자기 회장에서 빠르게 도망친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가서 낭독을 듣기 위해 도착한 아카리와 담배를 핀다. 맞담배를 피면서 그는 말한다. “아무래도 저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같이 도망치실래요?” 아카리는 그와 함께 클럽에 간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을 만난다. 둘은 사랑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여동생이 이렇게 말하는 지점에서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섹스 상대는 얼굴로 골라요. 이상한가요?” 아카리는 클럽에서 자신을 찾는다. 이 영화가 어떤 긴장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두 가지 가치의 대립이 성립해야만 한다. 하나는 정상가족의 이데올로기와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견고한 보수적 가치, 다른 하나는 그 순환고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연대와 진보적 가치. 그러나 이 영화는 대부분의 정치 영화가 그러듯 하나의 가치를 옹호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고통스러운 “기나긴 밤”을 지난 뒤에 선택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드라마로 보여줄 뿐이다. 무엇이 옳은지 강요하지 않는 게 영화의 미덕이라지만, 감독은 간접화법보다 직설화법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후미가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아카리는 병원 옥상에서 담배를 핀다. 첫 번째 담배에서 도망을 택한 자에게 두 번째의 담배는 도망자가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로 성립한다. 사쿠라코의 남편은 출근길에 주저앉아서 운다. 보호소에서 살고 있는 준의 소식은 아마도 영원히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아마 이를 말한다. 세상에는 타인의 도망을 돕는 우카이가 있고,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는 소설가가 있고, 헤어진 아내를 찾아서 사랑의 정의를 스스로 갱신하는 과학자가 있고,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일본의 미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건대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 혹은 많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지진 이후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 세상에서, 적어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경험은 꽤나 만족스러운 보상이 아닌가. 5시간과 17분을 대가로 그런 보상을 얻는다면, 우리는 영화관과 좋은 딜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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